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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마법사]

[연애,심리]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

by 꿈꾸는 파도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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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교회 청년부에서 요한복음으로 설교 중이다. '끝까지 사랑'이라는 말은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 주에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생겼었고, 눈에 띄게 되어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사게 된 경위는 분당 우리 교회 이찬수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언급한 적이 있어서 사서 읽게 되었다.

 

주관적인 나의 느낌은 신학교를 다녀와 정신과 의사님의 글이라고 해서 보수적이라거나 딱딱하거나 그런 느낌보다는

할 말은 하되 신앙의 색채는 잃어버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일반 사람들도 부담 없이 읽을만하다. 문득 누가도 의사였다고

하니 이런 느낌일까?

 

책에 그어져 있던 나의 한 줄들

 

나를 찾는 여정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특권이다. 17P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정의하는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

누구의 아들, 딸, 누구의 남편, 아내, 누구의 아빠, 엄마, 어느 직장의 누구인지도 전부 버려라.

그다음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 18P

 

'아, 부인해야 할 자기는 바로 자기 생각, 자기 믿음, 자기만의 틀이구나. 예수님을 따르고 십자가를 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이구나! 25P

 

자존감의 대가 바울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바울이 말하는 자존감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울의 자존감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에서 비롯되었다.(히 13:8 참조). 

즉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기에 그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41P

 

미국에 있을 때 내적 치유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예수님의 치유 방법이 정말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세미나 장소에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돌산을 지나 한없이 달렸다.

가기 전에 기도를 받았는데, 이 세미나에 가면 금은보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대감이 더

충만했다.

 그런데 3박 4일의 세미나 기간 동안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세미나와 비슷했다.

갑자기 속이 상했다. 그래서 마지막 통성기도 시간에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돌산을 뚫고 왔는데 금은보화는 대체 어디 있나요?'

그때 이런 마음이 들었다. 

 

'금은보화는 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 43:4 

 

(중략)

 

'그래, 금은보화가 맞아. 하나님이 직접 죽으심으로 나를 구해 주셨잖아.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최고의 것이야.'

내가 소중한 존재인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 49P

 

 그런데 우리 안에는 불편을 피하려는 습관이 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불편을 피하려고만 한다. 현명한 사람은 화병에

걸리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

자가 애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면 남을 무시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또한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으면 잘못을 모두 자기 탓으로 여긴다. 74~74P

 

Q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서 관계를 끊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상대가 제 탓을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마음의 상처가 더욱 커지고

죄책감에 빠집니다.

제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상대에게 맞춰진 관심의 초점을 

내 감정을 돌보는 쪽으로 돌리세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관계를 이어가려고 애쓰는 마음은

칭찬받아 마땅해요.

 

하지만 가끔은 상대의 기대를 외면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요.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배려를 베풀고,

그의 친절한 반응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런 관계에 의존하고 집차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 상대의 기분에 휘둘린다면

그 관계는 계속 같은 패턴으로 흐를 거예요.

 

상대에게 맞춰진 관심의 초점을

내 감정을 돌보는 쪽으로 되돌리기만 해도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관계 맺기가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82~83P

 

어거스틴은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당신을 알기 위해 제 자신을 알게 해 주십시오." 119P

 

크리스천들의 강박은 죄책감이 항상 따라온다.

 

신앙이 내 인생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독감에 걸렸을 때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의 병부터 치료를 해야 신앙이

회복될 수 있다. 

 

걱정과 강박이 많은 사람들은 생각중독자이다. 134P

 

사실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다.

남에게 잘해주는 것도 누구를 위해 잘해줬는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기 싫고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을 '타향지향성'이라고 하는데,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 조력자 증후군,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여기에 속한다.

 

조력자 증후군인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지랖 넓게 행동하다가 상처를 쉽게 받는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다가

소위 '호구'가 된 느낌을 받는다. 139~140

 

또한 남을 신경 쓰다 보면 착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쉽다.

합당한 보상이 없어도 계속 남을 도와야만 마음이 편하다. 특히 크리스천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 강박적으로 헌신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중략) 이런 사람들의 바탕을 보면 허기진 자기애적 욕구가 있다.

(중략) 겉으로는 선행을 하며 남에게 베풀지만 결국은 자기의 허기짐을 채우고

포장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은 실족도 잘한다. 

 

우리는 모두 갈망하는 존재로 태어났는데, 그 심리적 공허함을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다른 것들로 자꾸 채우려 한다. 음식뿐 아니라 술이나 쇼핑,

마약이 대체물이 될 수 있다.

(중략)

하나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중요한 것은 그분과 친밀함으로 인한 영혼의 충만이며,

이것만이 우리 영혼의 갈망을 채울 수 있다. 166P

 

그래서 그날 묵상 노트에 "일하려고 쉬는 것이 아니라 쉬려고 일하는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171P

 

힘들고 지치고 공허해서 누구라도 붙들고 얘기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영적 습관, 삶의 리듬, 삶의 원칙을 점검해야 한다. 172P

 

바쁜 건 자랑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바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바쁘지 않으면 뭔가

도태되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쓸모없는 사람 같고, 내가 없어져도 이 세상이 잘 굴러갈 것 같다.

 

그냥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 놀고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쉬고 있어.

나는 이런 놀이를 가지고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들에게 꼭 이 질문을 던진다. 

"취미가 있으세요?" 173P

 

압박감이 느껴져야만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일중독일

수 있다. 

그래서 바쁠수록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해달라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남에게 칭찬 한마디를 건네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감사 일기를

기록해 보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작은 선행을 베풀 때 우리 뇌에서는 엔도르핀을 비롯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우선 수위는 '말씀'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벌인 일들보다

더 중요하다.  (중략)

나 역시 '그동안 허둥대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일 좋은 일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일이었다. 내 맘대로 하고 살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데 우리가 먼저 뛰어가 놓고 '왜 응답이 없으시지'라며

속상해한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피곤할까?'

 

결국 하나님과 내가 얼마나 시간을 보냈냐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고, 연애하듯 구분을 알아갔는가'만 남는다.

 

그러므로 속도를 늦추기 위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한적한 곳을 찾아 고독과 침묵의 훈련을 해야 한다.

피곤하고 스트레스받고 바쁠 때일수록 침묵의 시간을 가져보라. 

 

"안식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중략)

또한 세상 권세에 대한 저항이며, 세상을 향한 내 믿음의 선포이다.

 

속도를 늦추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완벽주의적인 성격.

끝없는 인정욕구, 성과를 이뤄내야 된다는 생각이 속도를 늦추지 못하게 막는다.

 

"왜 좀 더 즐기지 못했을까요? 왜 사랑하는 사람과 더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요?

왜 아내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좀 더 못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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